- 저자
- 한병철 지음
-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 2012-03-05 출간
- 카테고리
- 인문
- 책소개
- 성과사회는 우울증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피로사회』는 현대사...
피로사회
좋은 삶이란 성공적인 공동의 삶까지를 포괄하는 개념이거니와, 그런 의미에서 좋은 삶에 대한 관심은 날이 갈수록 생존 자체에 대한 관심에 밀려나고 있다.
근대는 신과 피안에 대한 믿음뿐 아니라 현실에 대한 믿음까지도 상실하는데, 이러한 상황은 인간 삶을 극단적인 허무 속에 빠뜨린다. 유사 이래 삶이 오늘날처럼 덧없었던 적은 없었다. 극단적으로 덧없는 것은 인간 삶만이 아니다. 세계 자체도 그러하다. 그 어디에도 지속과 불변을 약속하는 것은 없다. 이러한 존재의 결핍 앞에서 초조와 불안이 생겨난다.
힘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긍정적 힘으로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이고, 다른 하나는 부정적 힘으로서 하지 않을 수 있는 힘, 니체의 말을 빌린다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이다. 이러한 부정적 힘은 단순한 무력함, 무언가를 할 능력의 부재와는 다른 것이다. 무력함은 단순히 긍정적인 힘의 대립항일 뿐이다. 무력함은 무언가를 해내지 못하는 것으로, 결국 그 무언가애 대한 종속이며 그 점에서 긍정적이고까지 말할 수 있다. ... 무언가 생각할 힘밖에 없다면 사유는 일련의 무한한 대상들 속으로 흩어질 것이다. 돌이켜 생각하기Nachdenken는 불가능해질 것이다. 긍정적 힘, 긍정성의 과잉은 오직 계속 생각해나가기Fortdenken만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우울사회
경험하는 인간은 타자와 마주한다. 경험은 이화적ver-andernd이다. 반면 체험은 자아를 타자 속으로, 세계 속으로 연장시킨다. 따라서 체험은 동화적ver-gleichend으로 작용한다. 자기애는 자기 자신에 비해 타자를 폄하하고 거부한다는 점에서 아직은 부정성의 영향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아는 타자와 대립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정립한다. 이로써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자는 타자와의 대립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는 것이다. 반면 나르시시즘에서는 타자와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나르시시즘적 장애를 겪는 사람은 자기 자신 속으로 가라앉는다. 그리고하여 타자관계가 소실되고 이에 따라 안정된 자아의 이미지도 형성되지 못한다.
알랭 에랭베르는 멜랑콜리와 우울증 사이에 단지 양적인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가정한다. 뭔가 엘리트적 분위기를 풍기는 멜랑콜리가 대중화되어 우울증이 되었다는 것이다. "멜랑콜리가 비범한 인간의 고유한 특징이었다면 우우증은 비험한 것이 대중화됨으로써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을증에 "멜랑콜리에 평등을 더한 것이며, 민주적인간의 전형적 질병이다." 그러나 에렝베르는 다른 한편으로 우울증을 니체가 예고했다는 주권적 인간의 도래가 대규모로 실현된 시대의 산물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는 "자신의 자주성에 지쳐버린" 사람, 즉 자기 자신의 주체가 될 힘을 상실한 사람이다. 그는 "주도적이어야 한다는 요구"의 끝없는 반복에 지쳐 있는 것이다.
에렝베르는 우울증을 경제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전적으로 자아의 심리학과 병리학이라는 관점에서만 바라본다. 우울증에 자주 선행하여 나타나는 소진Burnout은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될 힘이 빠져가는 주권적 개인의 증상이라기보다는 자발적인 자기 착취의 병리학적 결과이다. ... 명령의 원천은 정체성과 관련된 상품이다. 사람들이 정체성을 자주 바꾸면 바꿀수록 생산은 더욱 큰 활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산업적 규율사회가 변함없는 정체성에 의존했다면, 성과주의적 후산업사회는 생산의 증대를 위해 유연한 개인을 필요로 한다.
자본주의가 일정한 생산수준에 이르면, 자기 착취는 타자에 의한 착취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능률적으로 된다. 그것은 자기 착취가 자유의 감정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성과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다. 성과주체는 완전히 타버릴Burnout 때까지 자기를 착취한다.
사회가 원자화되고 사회성이 마모되어감에 따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존해야 할 것은 오직 자아의 몸밖에 없다. 이상적 가치의 상실 이후에 남은 것은 자아의 전시가치와 더불어 건강가치뿐이다. 벌거벗은 생명은 모든 목적론, 건강해야 하는 이유를 제공하는 모든 목표 의식을 지워버린다. 건강은 자기 관계적으로 되며 목적 없는 공허한 합목적성으로 전락한다.
성과사회의 호모 사케르는 절대로 죽을 수 없다는 점에서 주권사회의 호모 사케르와 구별되는 또 하나의 특징을 지닌다. 이들의 생명을 완전지 죽지 않는 자들Untote의 생명과 비슷하다. 그들은 죽을 수 있기에는 너무 생생하고 살 수 있기에는 너무 죽어 있는 것이다.
~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피로사회> 중에서 ~
#소진님이 정한 프로네시스 4월 도서.